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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커이슈] 한국형 메이커 스페이스의 가능성과 비전을 찾아서
등록일 : 2018-04-06 17:38:52 조회수 : 90

◆ 창의성은 어떤 환경에서 탄생할까? 
   

메이커와 DIY 활동이 활발한 북미권에는 국내에선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차고 문화(‘개러지 문화’라고도 합니다)가 있습니다. 차고 한쪽에 여러 가지 도구를 만물상 같이 늘어놓고, 이것저것 만들면서 친구들에게 보여주거나 취미을 공유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는 겁니다. 이렇게 차고는 한 사람이 가진 영역이 아닌 공유와 소통의 장소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이곳에선 상상할 수 없는 혁신적 아이디어들과 다채로운 문화가 생성됩니다. 차고 문화는 1938년 빌 휴렛(Bill Hewlett)과 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가 에디슨가 367번지 집의 차고를 얻어 휴렛 팩커드를 창업한데서 비롯되었는데요. 이후로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기업가 정신을 낳는 장소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애플 역시 스티브 워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실리콘밸리의 한 차고에서 창업한 회사입니다. 구글(Google)과 어도비(Adobe) 역시 차고에서 태어났습니다.​

 

 

(왼쪽부터) 실리콘밸리의 차고 문화 / ‘실리콘밸리의 탄생지’ 표지 / 휴렛 팩커드 차고

 

이 글에선 차고 문화에 숨겨진 환경적 요인 세 가지에 주목하여 한국형 메이커 스페이스의 가능성과 비전을 찾고자 합니다. 이 공간적인 요인은 창조성과 메이커 문화를 끌어내는 데 큰 역할과 기능을 하며, 4차 산업혁명과 IT 변혁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없어서는 환경 인프라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 차고 문화의 환경적 요인 세 가지

1) 문화가 자발적으로 생산되고, 확장되는 것을 도와준다.

2) 권위를 탈피하여 열려있다.

3)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쓴다.​

 

메이커 스페이스와 메이커 문화가 한국 사회에 잘 정착하기 위해선 교육 환경이나 관련 시장 조성 등 다양한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이 문화적 공간을 잘 이해해야 하고 동시에 환경 인프라가 갖춰져야 할 것입니다. 최근 문화공간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특히 20~30대 젊은 세대의 활발한 참여로 사회적 동력으로 확장되고 있는데, 관련 문화복합공간들의 사례와 경향을 소개하고, 앞서 말한 세 가지 환경적 요인과 견주어 얘기하려고 합니다.

 

◆  공간의 가치가 중요한 시대

현대경영의 창시자로 불리는 톰 피터스(Tom Peters)는 현대사회 속에서 기업을 움직이는 구동력은 바로 사람이며, 사람만이 가진‘창발적 상상력*과 열의’가 비즈니스의 성공을 가를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존에 인정되었던, 기계와 육체로 만드는 결과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이미 과거의 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창발적 상상력?

 - 이전에 관습이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체계나 사고가 발생된 현상 또는 특성이 표출된 상상력

 

이렇듯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IT 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는 지금에 와서야 비로소 기업과 사회가 개인의 창의성을 어떻게 향상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공간’의 의미는 변화했습니다. 문화복합공간(Cultural Complex)과 스마트 워크(Smart Work)와 같이 공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나타났습니다. 창의적인 환경과 공간의 잠재적 가치를 새롭게 해석해서, 집단과 사회의 창의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지요. 이제 공간의 가치는 공간이라는 자체의 물질이 아니라 창의적 콘텐츠와 소프트웨어를 담고 있는 감성적 그릇이 된 것입니다. 공간에 대한 사회의 새로운 요청과 정부와 정책 주도로 이뤄졌던 문화공간에 대한 지원과 창출이 최근에는 기업으로도 확대돼 기업 주도로 설립되는 복합문화공간도 역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기업이윤만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적 복합문화공간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립니다. 기업 이미지와 마케팅 목적으로 개설되는 복합문화공간은 콘텐츠 전반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 없이 단기적인 홍보 수단으로 이용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1) 문화가 자발적으로 생산되고, 확장되는 것을 도와준다.

◆   문화 복합이 아닌, 문화를 자발적으로 생산하게 하는 공간이 필요 

메이커 스페이스 조성에서 가장 중요한 비전은 사람들의 삶에 밀접하게 스며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문화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느냐의 여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 부분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문화가 물리적으로 결합하는 융복합(Hybrid)적인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문화 생산이 인문, 사회, 경제, 예술 영역으로 확장되게끔 공간이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회에선 실리콘밸리의 차고 공간이 이런 중요한 순환적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 고대 그리스 아고라(Agora) - 문화의 자생적 공간

이러한 맥락과 통하는 최초의 문화 자생 공간은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Agora)입니다. 아고라는 뚜렷한 기능과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목적을 띤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사건과 이벤트가 열리는 베뉴(venue)적 공간이었기에 다양한 사람이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문화를 공유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대화와 토론’을 하며 사교하는 광장이기도 했지만 직접 제작한 작품과 물건들을 가지고 나와 손수 판매를 하는 열린 시장인‘프리마켓(Free Market)이기도 했습니다. 모두 자발적인 참여와 교환을 하면서 창조적인 경제활동을 해서 자연스럽게 도시를 경험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습니다. ​

 

 


# 위워크 코워킹 스페이스(Wework co-working space) - 현대판 아고라

 

그렇다면 현재도 이러한 아고라와 같은 문화 자생 공간이 있을까요? 바로 위워크(Wework)라는 협업 공간, 즉 코워킹 스페이스를 아고라와 유사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습니다. 광장으로서 공공성을 띤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협업 공간인 위워크에선 다양한 사람이 모여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정보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더 나아가 벤처 비즈니스를 이루어가기도 합니다. 투자 네트워크를 통한 경제활동에도 상호작용하는 우연성과 창발성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다양한 사람들 간 지식 교류와 소통 자체가 거대한 융합이며, 이러한 환경에서 개개인의 창의력이 극대화됩니다.​

 

 

2) 권위를 탈피하여 열려있다.

◆ 분류 체계에서 융합으로 - 공간의 지각변동

알렉스 라이트의‘분류의 역사’책에 의하면 18~19세기의 산업화를 기점으로 대량생산이 실현됩니다. 이를 통해서 대중 소비가 퍼지고 물질적 풍요의 시대가 열리면서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노동 시장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그리고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체재와 분류의 시대’가 되며, 각종 정보처리기술과 산업적 기준의 분류체계에 의해 고대의 아고라 같은 복합문화공간은 교육시설(학교, 학원), 문화예술시설(공연장, 미술관, 전시관), 도서관 등의 각자의 성격을 띤 것으로 분류됩니다. 각 분류 속에서 효율적인, 합리적인 실용성을 판단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 시대의 공간은 실용적이고 목적을 가져야 가치가 있는 것을 생각되게 됩니다. 정체성이 뚜렷하지 않은 모호한 공간, 열린 공간 보다는 개인적인 공간의 개인적인 배분과 효율성을 따지게 됩니다.​

 

 


알렉스 라이트의 ‘분류의 역사’  / 블리스의 학문 분류 체계 / 중심성과 탈중심적 구조

 

#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 예술의 권위를 탈피한 탈중심적 문화복합공간

일본 가나자와에 위치한 21세기 미술관은 세지마 가즈요와 니시자와 류에가 공동 설계하였습니다. 이들이 설립했으며 세계적인 일본건축가 유닛인 ‘SANNA’는 2010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건물은 누구나 부담 없이 언제든지 방문할 수 있으며 다양한 만남과 체험의 장이 될 수 있는 공원 같은 열린 미술관을 지향하며 설계했습니다. ‘평상복을 입고도 갈 수 있는 미술관’이나 ‘히로사키 예술 거리와 광장’이라는 키워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미술관의 특징은 티켓을 구매 하지 않고도 건물 내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하고, 시민들이 이용하는 시설을 둥근 건물 내에 위치시켜 놓은 것입니다. 주변부는 무료로 교류할 수 있는 구역이 되고, 건물에 들어갈 때에도 티켓을 살 필요 없이 거리를 거닐 듯 그대로 관통할 수 있습니다. 중심부에 있는 몇 개의 크고 작은 전시공간은 유료지만, 전시실 주변 곳곳에 비워진 공간이 있어 시민들이 다양한 이벤트와 전람회를 스스로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습니다. ​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 시민의 능동적 참여가 가능한 열린 문화복합미술관 

 

 

열린 공간의 연결하기 위해 미술관의 내․외부 경계는 앞과 뒤의 구분이 없는 투명유리를 사용했고, 다양한 높이의 수직적 천정을 통한 자연광, 주변 경관과 자연을 담을 수 있는 사이와 틈 공간을 잘 활용하여 빛과 공간의 독립성과 개방성도 배려하였습니다. 미술관 내부에서 바깥 경관을 바라보는 관람객, 공원에서 미술관 안을 바라보는 지역주민, 그리고 건물 유리에 비친 다채로운 자연경관들을 보는 시선이 교차합니다. 이런 공간 구성이 시민과 예술 작품의 상호작용을 유도하는데, 이것이 바로 21세기 미술관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기존의 미술관이 가졌던 권위를 버리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참여를 이끄는 아고라식 열린 공간 선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버려진 공간을 새롭게 쓴다.

◆ 문화 콘텐츠와 공간 체험(Physical Experience)을 소비하는 시대

인구 5만의 작고 조용한 일본 다케오시의 시립 도서관은 츠타야(Tsutaya)가 위탁 운영을 맡아 개관한 지 13개월 만에 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영국 런던에 위치한 테이트 모던(Tate Modern)은 문을 닫았던 화력발전소를 리노베이션하여 세계적인 복합문화공간의 트랜드세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성수동의 대림창고나 근방의 수제 맥줏집들도 오래된 방적 공장이나 물류 공장이었던 장소도 재해석되어 새로운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탄생하고 있습니다.​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과 / 일본 다케오시립도서관 / 한국 성수동 대림창고 

 

과거 도시 속 잉여 공간, 슬럼화되어 열악한 환경의 상징이었던 공장과 같은 유휴 공간들이 새롭게 재탄생하고 사람들이 이런 장소에 매료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제는 탁 트인 8차선 도로가 넓게 뚫린 입지 좋은 상권보다 다양한 사건과 이벤트가 존재하는 해방촌이나 서촌 같은 골목상권이 더 선호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성장시대의 새것과 자본적 가치에만 의존하던 우리의 삶의 방식이 급속도로 변화하여, 콘텐츠의 가치와 공간적 경험을 소비하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문화콘텐츠, 미디어를 통한 공유 및 확산, 공간체험

 

이와 같은 맥락에서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모든 시민의 예술적 수준과 니즈를 고려하기보다 20대 여성을 타깃으로 모든 전시와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현재 시장의 주 소비층이며 정보 확산의 허브이기 때문입니다. 20대 여성의 움직임과 소비행위는 디지털 미디어와 SNS를 통해 동시에 공유되고 확산되어 소위 ‘핫플레이스’를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 영국 어셈블 예술가 그룹(Assemble group) - 도시의 유휴공간 재생

어셈블 스튜디오는 20여 명의 20~30대 건축가와 디자이너들이 모인 예술가 그룹입니다. 이들은 영국 리버풀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슬럼화되고 있는 유휴공간과 공공주택 단지를 재생시키는 공공 프로젝트들을 진행했고, 이 프로젝트로 영국 최고 권위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했습니다. 2010년에 그룹을 결성한 이래로 어셈블은 거주하고 있는 주민 사회와 긴밀히 협력하면서 지역사회 발전과 커뮤니티 재생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 영국 어셈블 예술가 그룹(Assemble group)

 

 

이들은‘Do It Yourself' 정신을 근간으로 주민들과 함께 직접 새로운 공공 공간을 만들고, 집 열 채를 직접 수리하면서 주민들에게 워크숍을 제공하고 일자리를 창출했습니다. 모든 작업이 주민과의 협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방치되고 소외되었던 집에 비로소 새로운 거주자들이 입주하기 시작했고, 마을 커뮤니티의 재생이 공기에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어셈블은 이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버려진 주유소를 극장으로 리노베이션한‘시네롤리엄(The Cineroleum)’, 우범 지역인 고속도로 다리 밑을 문화 공간으로 만든 ‘폴리 포 어 플라이오버(Folly for a Flyover)’, 제당소 일대의 건물을 예술가의 작업장으로 탈바꿈시킨 ‘야드하우스(Yardhouse)’등의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한국형 메이커 스페이스의 비전과 방향성의 궤도를 찾기 위해서는 이런 영국 젊은 세대가 보여준 것과 같은 자발적 참여와 지역 주민과의 협업, 현실적인 실행력과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한국의 지역사회는 아직도 소통과 문화가 결핍된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습니다. 메이커가 이러한 실제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고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글 : 한양대학교 디자인대학 이민수 교수